정온 (鄭蘊)
초계 정씨
추정 근거
17세 확정 근거: 정종욱(30세)이 정온의 직계 13대손 → 30-13=17세. 정승(7세)~정온(17세) 사이 8~16세 중간 세대는 미상.
약력
조선 중기의 문신. 시호 문간(文簡) → 문간공파(文簡公派)의 유래.
초계정씨 박사공파 상시공파. 자(字) 휘원(輝遠), 호(號) 동계(桐溪)·고고자(鼓鼓子).
인조 때 홍문관 대제학.
【생애 — 광해군 시대】
• 정인홍의 제자, 대북파 일원.
• 광해군3년(1611) 사헌부 정언(正言)으로 경운궁 이어를 강력히 반대.
→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외직으로 전출.
• 스승 정인홍이 이이첨에게 이용당하자 배사(背師).
• 영창대군 피살 후, 영창대군 복권 상소.
• 폐모론에 강력히 반대 → 제주도 위리안치(1613~1623, 10년 유배).
【인조반정 이후】
•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남. 대사간, 이조참판 역임.
• 정인홍 처형에 유일하게 반대 → 정인홍 가문의 연좌를 막음.
• 인조에게 간언을 잘했으나, 뜻이 안 맞으면 하직인사 없이 사직하기도.
→ 인조: "경이 하직도 않고 돌아간 것은 지나치다. 봄에 올라오라."
【병자호란 (1636~1637)】
• 김상헌과 함께 강경 척화론자.
• 모든 정예병력을 압록강으로 차출, 인조가 개성까지 행차해
군을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. 전장을 압록강~청천강 사이로 한정하는 전략.
• 주화론자 최명길조차 "전쟁을 꼭 해야 된다면 정온의 주장이 합당" 동의.
• 인조의 항복(삼배구고두) 후 분노하여 배를 찔러 자결 시도.
→ 주위 사람 덕에 생존.
• 고향 덕유산에 은거, 1641년 사망.
【사후】
• 242년 뒤(1864, 고종1) 이장 시 육신이 온전,
어깨와 목에 핏자국이 은은히 남아 있었음.
【후손】
• 정종욱(30세, 鍾 항렬) — 제3대 주중대사. 정온의 직계 13대손.
• 정균호(29세, 均 항렬) — 독립유공자, 건국훈장 애국장.